[2020-11-01] 하나님은 누구신가?

다니엘 기도회 1일차

예레미야는 기도할 때 자신이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분명히 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새슬 나눔 때 주미가 했었던 말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나는 바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모두 같은 하나님을 믿지만 각자 다른 하나님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었다.
모두가 다른 분을 섬기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고.
대학교에 오기 전까진 자신은 하나님은 엄격하신 분이시고 두려우신 분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대학교에 와보니 하나님을 정말 친구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으며,
편한 이미지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혼란스러웠었다고 고백해줬었다.

부르심이 다르고, 주님께 받은 달란트가 다르고 각자 다른 부분의 지체의 역할을 맡고 있기에,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각각 다르니 누구는 열정으로, 누구는 조신함으로 주님께서 부여하신 믿음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바울도 바나바와 전도여행중 틀어 졌던 것 처럼 우리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우리가 만들어 가는 분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지 그 대상이 누구인지 어떠한 분이신지 끊임없이 알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같다.
구약시대 정말 많은 이방신들이 있었고 하물며 하나님이라고 생각을 하며 기도를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허다하게 나온다.
그래서 내가 구하는 분이 누군지 알기 위해 하나님을 지칭할 때 이러한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의 조상의 하나님,,,

기적을 보여 주시고,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신 주님 그 분이 나의 주님이시고 나는 그 분을 따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냥 내가 만들어낸 막연한 신이 아닌 성경에서 행하셨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잊지 말고 더욱 알아가도록 성경을 가까이 하자

어제 묵상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부흥에 대해서 묵상을 했었고
고린도전서 3:16, 마태복음18:20에 대해서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요렇게 오늘 설교 말씀에 나와서 신기했다.

오늘 제일 깊이 묵상해보고 마음에 와 닿은 것은 나의 소망은 무엇인가?
나는 소망을 잃지 않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확신함으로써 소망을 잃지 않았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낫는다 하시면 낫는 것을 확신하였고,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신다고 하시면 구원을 얻을 것을 확신했기에
그에겐 소망이 있을 수 있었다.

결국 작은 것이지만 나의 인식과 나의 마음먹기에 따라 소망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빨리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끝까지 이를 악 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예레미야도 현실만을 바라봤다면 낙심하고 찬송이 흘러나오지 않았을텐데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바라봤기에 소망을 잃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내가 어떠한 마음을 품느냐가 하나님께로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오늘 말씀에서도 나온 히브리서 10:19
‘소망을 굳게 잡으라’ 예수의 피로 힘을 입은 자들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담력을 얻는다…

이것을 보고 내가 소망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떠했는지가 보였다.
나의 소망은 마지막 날 까지 내가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의 품에 껴 안는 것
지금까지 나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 저도 주님을 사랑해요 라고 고백하고 싶다.
지금은 내가 육체로 있기에 하나님을 더 느끼기 힘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에 어려움이 많지만
내 영이 주님의 품에 갔을 땐 모든 장애물 없이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망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떠했을까?,,,
히브리서 10:19 말씀을 보고
전에 프사로 까지 했던 묵상 말씀인
예레미야 애가 3:19~24 너무너무너무 생각이 많이 났다.

오늘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같이 우리가 낙심되고 불안한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가 육신으로 있기에 걸림돌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히브리서 10:19 말씀처럼
주님께서 내게 주셨던 은혜와 모든 축복들이 내가 다시 주님께로 나아갈 힘을 준다.

그럼 내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레미야 애가 3:19~24에서 나왔다.
내가 살면서 정말 낙심이 많이 되고 슬펐지만 주님이 나의 소망이 되신 이유는
주님의 크신 인자와 긍휼이 나를 진멸케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오늘 하루를 허락하여 주셨다는 것, 지금도 살아 숨쉰다는 것은
내가 심판의 보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내게 허락하여 주셨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낙심하고 넘어져도 지금 당장 나를 죽이시지 않고
아직도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 내게 너무나도 큰 은혜이고 감사이다.
나답과 아비후를 보면 얼마나 불쌍한가,,, 바로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죽음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게 회개의 시간도 허락하여 주시고,
나의 소망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고,
나의 소망이 되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묵상한 시간이 되었다.